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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0(zero)의 유래 본문
0의 개념은 오랜 기간에 걸쳐 형성되었다.
0의 두 가지 기능
0에는 '숫자로서의 0'과 '자리지킴이로서의 0' 이렇게 두 가지 기능이 있다.
숫자로서의 0은 말 그대로 없음(無, empty)의 0이다. 가령, 탁자 위에 사과가 한 개 있다고 가정해보자. 그 사과를 먹고 나면 남은 사과의 갯수는 0이다. 이것이 없음의 0, 숫자로서의 0이다.
'자리지킴이로서의 0'을 이해하기 위해 이번에는 탁자 위에 사과 스무 개가 있다고 가정해보자. 이를 숫자로 20이라고 나타내는데, 여기서 0은 숫자 2가 일의 자리가 아닌 십의 자리에 있음을 나타내기 위해 사용된다. 즉, 일의 자리가 비었음을 표시하기 위해 사용되는 자리지킴이로서의 0이다. 이런 0은 자리를 차지한다하여 placeholder 또는 placekeeper라고도 불린다.
역사적으로는 숫자로서의 0보다 자리지킴이로서의 0이 더 오래되었다. 그 유래는 기원전 3000년경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수메르인(Sumerian)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반면 숫자로서의 0은 그로부터 3,500년 정도 지난 서기 4세기 경 인도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그 시간이 완전히 특정되지 않은 만큼 아직 연구가 진행 중이다.
수메르인과 그들이 숫자를 기록하는 방식
과연 수메르인들은 어떤 연유로 0을 처음 사용하게 된 걸까? 이는 그들이 숫자를 표기하는 방식과 관계가 있다.
숫자를 표기하는 방식을 '기수법(記數法, 기록할 기記, 셈 수數)'이라고 하는데, 기수법에는 크게 '위치 기수법'과 '비위치 기수법' 이렇게 두 가지가 있다.
위치 기수법(Positional numerals)은 요즘 우리가 사용하는 아라비아 숫자와 같이 자릿수가 있는 표기법이다. 예를 들어, 537이라는 숫자는 5개의 100이 있고 3개의 10이 있고 7개의 1이 있는 숫자다. $$ \begin{align} 537 = 5\times100 + 3\times10 + 7\times 1 \end{align} $$ 이러한 위치 기수법에서는 53과 503은 다른 의미이기 때문에 자리가 비었다고 알려주는 0이 필요했던 것이다. (역시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
이처럼 숫자를 표기하는 방식이 자리지킴이로서의 0을 만들게 했다는 점은 수메르인 외 다른 문명에서도 알 수 있다. (아래 그림 참조.) 마야 문명, 중국 그리고 인도와 같이 위치 기수법을 사용한 곳에서는 시기가 다르더라도 대체로 0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학자들은 남아메리카 지역의 마야 문명에서는 바빌로니아 문명과는 독립적으로 서기 350년경 자리지킴이 0이 사용되기 시작한 것으로 추정하고, 인도에서는 3세기 또는 4세기, 중국에서는 늦어도 5세기에는 0이 사용된 것으로 추정한다.
- 바빌로니아 숫자에는 가운데 작은 쐐기 2개가 자릿수 0을 의미한다.
- 마야 숫자에서는 왼쪽 거북이 모양 위에 있는 눈 모양이 자릿수 0을 의미한다.
- 중국 숫자에서는 빈 칸이 자릿수 0을 의미한다.
- 인도 숫자에서는 가운데 점이 0을 의미한다.
이렇게 수메르인에 의해 처음 사용된 자리지킴이로서의 0은 그 후 기원전 2400년경 같은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북부 지역에 자리한 아카디아(Akkadian) 문명으로 전해지고, 기원전 1900년경 이는 다시 바빌로니아(Babylonian) 문명으로 전해진다.
참고로 비위치 기수법(Non-positional numerals)은 자릿수가 아니라 10, 20, 50, 100 등을 나타내는 숫자가 따로 존재하는 숫자 시스템으로, 로마 숫자(Roman numeral)가 대표적인 예다.
$$ \begin{array} {|c|c|c|c|c|c|c|c|}\hline 기호 & {\rm I} & {\rm V} & {\rm X} & {\rm L} & {\rm C} & {\rm D} & {\rm M} \\ \hline 값 & 1 & 5 & 10 & 50 & 100 & 500 & 1000 \\ \hline \end{array} $$
$$ \begin{align} 1&={\rm I} & 10&={\rm X} & 100&={\rm C} & 1000&={\rm M} \\ 2&={\rm II} & 20&={\rm XX} & 200&={\rm CC} & 2000&={\rm MM} \\ 3&={\rm III} & 30&={\rm XXX} & 300&={\rm CCC} & 3000&={\rm MMM} \\ 4&={\rm IV} & 40&={\rm XL} & 400&={\rm CD} \\ 5&={\rm V} & 50&={\rm L} & 500&={\rm D} \\ 6&={\rm VI} & 60&={\rm LX} & 600&={\rm DC} \\ 7&={\rm VII} & 70&={\rm LXX} & 700&={\rm DCC} \\ 8&={\rm VIII} & 80&={\rm LXXX} & 800&={\rm DCCC} \\ 9&={\rm IX} & 90&={\rm XC} & 900&={\rm CM} \end{align} $$
이를 이용하여 몇 가지 숫자를 예로 살펴보면, $$ \begin{align} 39 &= {\rm XXX} + {\rm IX} = {\rm XXXIX}. \\ 246 &= {\rm CC} + {\rm XL} + {\rm VI} = {\rm CCXLVI}. \\ 789 &= {\rm DCC} + {\rm LXXX} + {\rm IX} = {\rm DCCLXXXIX}. \\ 1,776 &= {\rm M} + {\rm DCC} + {\rm LXX} + {\rm VI} = {\rm MDCCLXXVI}. \\ 1,918 &= {\rm M} + {\rm CM} + {\rm X} + {\rm VIII} = {\rm MCMXVIII}. \\ 1,954 &= {\rm M} + {\rm CM} + {\rm L} + {\rm IV} = {\rm MCMLIV}. \\ 2,421 &= {\rm MM} + {\rm CD} + {\rm XX} + {\rm I} = {\rm MMCDXXI}. \end{align} $$
다음 숫자들을 보면 이러한 표기법에는 자리지킴이로서의 0이 필요하지 않음도 알 수 있다. $$ \begin{align} 160 &= {\rm C} + {\rm LX} = {\rm CLX} \\ 207 &= {\rm CC} + {\rm VII} = {\rm CCVII} \\ 1,009 &= {\rm M} + {\rm IX} = {\rm MIX} \\ 1,066 &= {\rm M} + {\rm LX} + {\rm VI} = {\rm MLXVI} \end{align} $$
잠시 역사 따라가기
앞서 기원전 3000년경 수메르인에 의해 처음 사용된 자리지킴이로서의 0이 기원전 2400년경 아카디아(Akkadian) 문명으로 전해지고, 기원전 1900년경 바빌로니아(Babylonian) 문명으로 전해진다고 언급했다.
수메르 문명, 아카디아 문명, 바빌로니아 문명 모두 메소포타미아(Mesopotamia) 문명의 일부다. 메소포타미아 문명은 오늘날 이라크 지역인 티그리스(Tigris) 강과 유프라테스(Euphrates) 강 유역의 비옥한 토지에 기원전 6000년경 구석기 시대 사람들이 정착하면서 탄생한 인류의 4대 고대 문명 발상지 중 하나다. (구글 지도에서 꼭 찾아보시길.)
- 기원전 5500년 ~ 4000년경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남부지방에 수메르인이 정착하고,
- 기원전 2900년 ~ 2334년경 초기 왕조 시대(Early Dynasty Period),
- 기원전 2334년 ~ 2154년경 북부 지역으로 패권이 넘어가는 아카디아 제국 시대(Akkadian Empire),
- 기원전 2112년 ~ 2000년경 우르 제3왕조 시대(Third Dynasty of Ur)까지 수메르 문명이 이어진다. (초기 왕조 시대에 제1왕조 시대라고 불리는 시기가 있고, 아카디아 제국 시대에 제2왕조 시대라고 불리는 시기가 있어서 그로부터 제3왕조라는 이름이 유래된다.)
이후 도시 바빌론(Babylon)을 중심으로 정착한 아모리인(Amorites)이 주변 국가들을 정복하기 시작하면서 바빌로니아 제국(Babylonian Empire)을 형성하게 된다. 기원전 1895년 ~ 1595년까지 약 300년간을 고대 바빌로니아로 구분하는데, 이는 기원전 620년경 등장하는 신바빌로니아 제국(Neo-Babylonian Empire)과 구분하기 위함이다.
'바빌로니아 숫자'로 수학사에 주로 등장하는 바빌로니아는 고대 바빌로니아다. 여담으로 고대 바빌로니아의 기원전 1792년 ~ 1750년사이의 통치자가 바로 함부라비 법전(Code of Hammurabi)으로 유명한 함무라비왕(1810-1750 BC)이다.
그리스 수학의 의문의 1패?
고대 수학의 메카라고 하면 그리스가 빠지지 않는다. 이집트로부터 수학이 전해진 후 기원전 7세기부터 서기 1세기까지, 약 7~800년에 걸쳐
- 탈레스 (Thales, 635-543 BC)
- 피타고라스 (Pythagoras, 582-496 BC)
- 플라톤 (Plato, 427-347 BC)
- 아리스토텔레스 (Aristotle, 384-322 BC)
- 유클리드 (Euclid, 325-265 BC)
- 아르키메데스 (Archimedes, 287-212 BC)
- 아폴로니우스 (Apollonius, 15-100 AD)
등을 배출하며 기하학에 지대한 공헌을 한 것이 바로 그리스 수학이다.
그러나 그리스 수학도 0을 생각하진 못한 듯하다. 그리스의 숫자 표기법이 위치 기수법(positional numeral)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만큼 0을 떠올리는 동기가 충분치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수학적 발견에는 아이디어 뿐만 아니라 그것을 표현하는 형식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여담으로 형식과 기호(notation)의 중요함은 미적분에서도 나타나는데, 미적분은 1666~7년경 영국 수학-물리학자 아이작 뉴턴(Isaac Newton, 1642-1727)과 1675년경 독일 수학자 라이프니츠(Gottfried Wilhelm Leibniz, 1646-1716)에 의해 각기 독립적으로 발견되었다. 뉴턴이 먼저 발견했음에도 불구하고 라이프니츠가 소개한 기호들($\frac{{\rm d}y}{{\rm d}x}, \int\,{\rm d}x$ 등)이 이후 미적분의 발달에 더 용이했고, 오늘날 우리는 주로 라이프니츠의 기호를 사용하고 있다.
인도의 불교 철학과 0(zero)
불교 철학에서 공(空)의 개념은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이러한 철학적 개념의 영향 때문인지 nothingness, emptiness를 의미하는 숫자 0의 개념이 처음 사용된 곳도 인도다. (물론 철학적 개념의 공(空)과 수학적 개념의 0이 완전히 동일한 건 아니다.)
서기 628년경 힌두 천문학자이자 수학자였던 브라마굽타(Brahmagupta, 598-668)가 0의 개념을 처음 정의하고 방정식에 도입한 것으로 알려진다. 브라마굽타는 숫자 아래 점을 찍어서 0을 표시했는데, 그런 그도 자신이 0을 만든 건 아니라고 주장한 만큼 당시 인도에 이미 0의 개념이 어느 정도 정착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실제 1881년, 지금의 파키스탄 마르단(Mardan) 지역에 있는 바크샬리(Bhakshali) 마을의 한 농부에 의해 들판에서 발견된 필사본에서 0을 사용한 기록이 추가로 나왔다. 당시 9세기의 문서로 추정되었으나 최근 방사성 탄소 분석(Carbon dating)에 의해 적어도 500년은 더 된 것으로 밝혀지며, 이르면 3세기 또는 4세기 인도에 이미 0의 개념이 있었던 것을 말한다. 이 문서는 지명의 이름을 따서 '바크샬리 필사본(Bhakshali manuscript)'으로 불리며, 현재 영국 옥스포드 대학 보들리안 도서관에 보관되어 관련 연구가 진행 중이다.
인도에서 발견된 문서가 왜 영국 옥스포드 대학교 도서관에 보관되어 있을까?
잠시 들여다보는 영국과 인도의 역사
1857년 영국이 인도의 '세포이 항쟁'(The Sepoy Mutiny 또는 The Indian Rebellion of 1857)을 무력으로 진압한 이후 인도를 직접 통치한다는 명목으로 1858년 영국령 인도 제국을 선포한다. 당시 영국은 동인도 회사(East India Company)를 통해 인도를 간접적으로 통치하고 있었고, 동인도 회사는 군대를 보유하고 있었다. 세포이(sepoy)는 페르시아어로 '용병'을 뜻하며 영국 동인도 회사에서 고용한 인도인 용병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이후 1876년까지는 여전히 영국 동인도 회사가 인도를 간접 통치했으나, 1877년 인도 제국이 성립(빅토리아 여왕이 자신을 인도 제국의 여왕으로 선언)되면서 인도는 영국의 직할령이 된다. 이후 영국은 인도를 발판으로 삼아 1880년대부터 1930년대까지 아프가니스탄 왕국의 일부 지방과 미얀마를 인도 제국에 합병하고, 그들의 지배는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면서 인도 자치령과 파키스탄이 영국으로부터 독립하면서 인도 제국이 해체되는 시기까지 이어진다.
인도사에서 이 시기를 '영국의 지배(British Raj)'라는 말로 표현하는데, 짧게는 인도 제국이 성립된 1877년부터 1947년까지를, 좀 더 포괄적으로는 영국의 실질적인 통치 아래 들어간 1858~1947년의 시기를 일컫는 말이다. Raj는 산스크리트어로 지배(rule)를 뜻하는 말이다.
0의 중동여행기
인도에서 쓰이기 시작한 0은 인도의 향신료와 함께 773년경 현재 이라크의 수도 바그다드 지역에 전해지게 된다. 이 지역이 바로 아라비아 반도로 아라비아 숫자가 나온 곳이다. 아라비아 숫자는 인도 숫자 체계에 기초하여 발달한 것으로 전해진다.
특히 당시 페르시아에서 가장 뛰어난 수학자로 손꼽히는 모하메드 알콰리즈미(Muhammad ibn Musa al-Khwarizmi, ? - 850)는 숫자의 빈자리에 0을 뜻하는 의미로 동그라미를 표시했고, 이 기호가 879년에 이르러 오늘과 같이 세로로 길죽한 형태의 0이 된다.
알콰리즈미는 0을 포함한 방정식을 9세기에 처음 사용한 것으로 기록되는데, 이것이 오늘날 대수(algebra)라고 부르는 학문의 시초다. (대수는 간단히 말해 수식에 관한 법칙을 다루는 학문으로 가령 $2x+1=3$에서 이항을 하고 양쪽을 2로 나누어서 $x$을 구한 기억이 난다면 바로 대수의 법칙을 이용해서 $x$값을 구한 것이다.)
알콰리즈미는 숫자들을 효율적으로 곱하고 나누는 방법을 고안하는데, 사람들은 이 방법을 '알고리즘(algorithm)'으로 부르기 시작했다. 알콰리즈미의 이름을 변형한 단어다. (알콰리즈미, 알고리즘, 알콰리즈미, 알고리즘, ...)
또한 알콰리즈미는 숫자 0을 사이퍼(sifr)라고 불렀는데, 이는 페르시아어로 비어있다(empty)는 뜻이다. 그리고 이 '사이퍼'라는 암호나 코드를 의미하는 cipher(사이퍼)가 전래되는데, 그 자세한 내막은 아래 '0의 유럽여행기'에서 다시 살펴보자.
0의 유럽여행기
0은 중동을 거쳐 8세기 무어인의 스페인 침공과 함께 유럽에 전해지고, 12세기 초에는 알콰리즈미의 역서가 영국에까지 전해진다. (무어인(Moor)은 유럽에서 중동과 북아프리카의 이슬람계 사람들을 일컫는 말로, 그 이름은 '어둡다, 검다'는 뜻을 지닌 그리스어 mavros(μαυρος)에서 유래된다.)
지중해 연안을 여행하며 상인들을 통해 인도-아라비아(Hindu-Arabian) 숫자 계산법을 접한 이탈리아 수학자 피보나치(Fibonacci, 1170-1250 추정)는 금새 인도-아라비아 숫자가 로마 숫자보다 계산에 용이하다는 것을 깨닫고, 1202년 그의 걸작 『Liber Abaci』 (Book of Abacus, 주판책)을 편찬한다. 주판책이라는 제목이지만 실제로는 고대로부터 사용해 온 주판(abacus) 대신 아라비아 10진법으로 계산하는 방법을 소개한다. 그리고 우리에겐 익숙하듯 이 10진법 계산에서 자리가 비었음을 알려주는 0은 필수다.
이내 피보나치의 방법이 주판보다 훨씬 효율적이라는 것을 알게 된 이탈리아 상인들과 독일 은행가들 사이에선 이 새로운 계산법이 널리 통용된다.
반면 중세 종교지도자들은 0의 사용을 탐탁치 않게 봤다. 모든 것에 신이 있다고 믿은 그들에게 아무 것도 없음을 나타내는 0은 곧 신의 부재를 의미했고, 신의 부재는 곧 악마를 의미했다.
결국 이탈리아 정부는 아라비아 숫자에 의심을 품게 되고 끝내 0의 사용을 금지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이미 0을 포함한 피보나치 계산법의 효율성을 알게 된 상인들은 비밀리에 사용을 이어갔고, 알콰리즈미가 사이퍼(sifr)라고 부른 0은 그렇게 '비밀리에 사용되는 암호나 코드'를 뜻하는 사이퍼(cipher)로 전래된다.
브라마굽타, 데카르트, 뉴턴 그리고 라이프니츠
앞서 본 것처럼 0의 시작은 628년 인도의 브라마굽타다. 브라마굽타는 덧셈과 뺄셈을 통해서 0에 이르는 방법을 알게 되고 (가령, $1-1=0$), 또 0을 통해 덧셈과 뺄셈을 보다 깊이 이해하게 된다. 다만, 그는 숫자를 0으로 나누는 실수(?)를 범하게 되는데, 무언가를 0으로 나눈다는 의미는 그로부터 1,000년이 지나 뉴턴과 라이프니츠 시대에 이르러서야 해결된 문제였다.
피보나치의 계산법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한 0은 약 400년 후 프랑스 철학자-수학자인 데카르트(Rene Descartes, 1596-1650)의 좌표축 원점이 $(0,0)$으로 인식되면서 존재감을 재확인한다. 데카르트는 그의 1637년 저서 『기하(La Géométrie)』에서 좌표축 아이디어를 기술한다. 또한 0이 있었기에 수직선과 좌표축에 관한 아이디어도 가능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후 뉴턴과 라이프니츠를 필두로 한 수학계의 르네상스가 이어지는데, 이때에 이르러 브라마굽타의 '0으로 나누는 문제'도 해결의 실마리를 보게 된다. 0이 아닌 숫자를 0으로 나누면 무한대(infinity)가 되는데, 무한대는 미적분과 함께 등장한 개념이다. 뉴턴, 라이프니츠와 동시대를 살았던 영국 수학자 존 월리스(John Wallis, 1616-1703)에 의해 $\infty$로 표기되었다. 참고로 수직선(number line)을 처음 고안한 사람도 존 월리스다. (끝)
참고자료:
- 제로 프로젝트(Zero Project): 네덜란드에 기반한 연구 프로젝트로 진행 연구 중 하나가 숫자 0의 유래다.
- YaleGlobal: The History of Zero
- Robert Kaplan: 『The Nothing That Is: A Natural History of Zero』
- Charles Seife: 『Zero: The Biography of a Dangerous Idea』
- George Gheverghese Joseph: 『The Crest of the Peacock; Non-European Roots of Mathematic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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